나는 아직도 드림캐스트가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좋은 게임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바로 반론이 들어올 수 있다.
"PS2가 훨씬 나중에 나온 기계인데?"
"성능도 PS2가 더 높은 거 아니야?"
"판매량은 비교 자체가 안 되잖아."
맞다.
특히 판매량으로 이야기하면 이건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PS2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기 중 하나가 되었고,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마지막 가정용 게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두 기종을 모두 가지고 실제 게임을 하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다시 봐도 비슷하다.
게임 화면 자체만 놓고 보면 나는 드림캐스트 쪽이 더 좋았다.
PS2를 처음 봤을 때의 묘한 느낌
PS2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기대감은 엄청났다.
당시 공개되던 스펙이나 데모를 보면 말 그대로 괴물 같은 게임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특히 Emotion Engine이라는 이름부터 뭔가 대단해 보였다.
나 역시 결국 PS2를 샀다.
그리고 PS2에도 정말 좋은 게임이 많았다.
『메탈기어 솔리드 2』, 『파이널 판타지 X』, 『귀무자』, 『철권』 시리즈, 『그란 투리스모』 등 PS2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게임도 많았다.
그러니 PS2 자체를 나쁜 게임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처음 PS2 게임 화면을 보면서 의외였던 것이 하나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화면이 깨끗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림캐스트 게임을 하다가 PS2 게임을 하면 화면이 약간 흐릿하고, 계단이 눈에 띄고, 텍스처가 거칠게 느껴지는 게임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어? 드캐가 화면은 더 좋은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느낌에는 이유가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GPU는 PowerVR2 계열이었고, 타일 기반 렌더링 구조를 사용했다.
반면 PS2의 Graphics Synthesizer는 전혀 다른 철학의 괴물이었다.
PS2는 엄청난 메모리 대역폭과 폴리곤 처리 능력을 가진 대신 그래픽 메모리가 4MB에 불과했고, 개발자가 하드웨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상당히 까다로운 구조였다.
반대로 드림캐스트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개발하기 쉬운 구조였고, PowerVR의 타일 기반 렌더링과 텍스처 압축 같은 기술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스펙표의 숫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차이가 화면에서 나타났다.
특히 당시 내가 중요하게 봤던 것은 폴리곤 숫자보다는
텍스처가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가, 색이 얼마나 깨끗하게 나오는가, 화면 전체가 얼마나 또렷한가
같은 부분이었다.
게임 그래픽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런 게 꽤 크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드림캐스트에는 VGA가 있었다
이것도 굉장히 컸다.
드림캐스트는 VGA 출력을 지원하는 게임이 많았고, 640×480 프로그레시브 화면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640×480이라고 하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CRT TV에서 인터레이스 화면을 보던 시대였다.
그때 PC 모니터에 VGA로 연결한 드림캐스트 화면은 충격적이었다.
글자가 또렷하고,
텍스처가 선명하고,
화면 떨림도 적고,
색도 깨끗했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영상 신호 자체에서 오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에뮬레이터나 HDMI 변환 등을 통해 두 기종의 화면을 비교하면 당시 느꼈던 차이가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실제 기기를 당시 디스플레이에 연결했을 때의 경험은 꽤 달랐다.
멀티플랫폼 게임을 보면 더 재미있었다
내 기억에 특히 재미있었던 것이 두 기종에 같이 나온 게임들이었다.
『Dead or Alive 2』
『Resident Evil CODE: Veronica』
『Rayman 2』
『MDK2』
『Crazy Taxi』
같은 게임들이다.
물론 게임마다 사정은 다르다.
PS2판에 추가 요소가 들어가기도 했고, 후발 이식판이 더 많은 효과나 콘텐츠를 갖기도 했다. 그래서 "드림캐스트판은 무조건 PS2판보다 좋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순수하게 화면을 봤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드림캐스트 버전이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텍스처가 더 또렷해 보이고,
색이 선명하고,
화면 전체가 깔끔했다.
실제로 당시부터 지금까지 해외 레트로 커뮤니티에서도 두 기종의 멀티플랫폼 게임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예를 들어 『Ready 2 Rumble Boxing: Round 2』의 경우 드림캐스트판은 640×480 프로그레시브 출력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PS2판에는 동적 그림자나 추가 그래픽 효과가 들어가는 식으로, 두 기종의 장단점이 아주 다르게 나타났다.
결국 PS2가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언제나 최종 화면까지 더 깨끗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PS2는 '힘이 센 기계'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두 기계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드림캐스트는 화면을 예쁘게 뽑기가 좋은 기계였고, PS2는 개발자가 죽어라 파고들면 엄청난 것을 할 수 있는 기계였다.
PS2 후기 게임을 보면 이 말이 이해된다.
『God of War II』 같은 게임을 보면
"이게 정말 PS2에서 돌아간다고?"
싶을 정도다.
초기의 PS2와 후기의 PS2는 거의 다른 게임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개발자들이 Emotion Engine과 Vector Unit, Graphics Synthesizer의 사용법을 몇 년 동안 익히면서 하드웨어에서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성능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PS2가 성능이 낮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잠재력은 PS2 쪽이 훨씬 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게임기에서 보는 것은 결국 스펙표가 아니라 TV에 나타난 최종 화면이다.
그리고 적어도 드림캐스트와 PS2가 경쟁하던 초기에는 내 눈에는 드림캐스트 화면이 더 좋았다.
그리고 PS2가 조금 밉다
여기부터는 완전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나는 PS2가 조금 밉다.
정확하게 말하면 PS2가 나쁜 게임기라서가 아니다.
드림캐스트의 시대를 너무 빨리 끝내버린 게임기라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드림캐스트가 실패한 원인을 전부 PS2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세가 역시 문제가 많았다.
세가 공식 기록에서도 드림캐스트 초기의 본체 공급 부족, 막대한 광고비, 빠른 가격 인하에 따른 비용 회수 문제,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비용 등이 회사에 큰 부담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압도적인 시장을 확보한 소니와 PS2를 상대로 서드파티 경쟁을 해야 했다.
결국 세가는 2001년 1월 31일 드림캐스트 생산 중단과 가정용 하드웨어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드림캐스트가 일본에서 나온 것이 1998년 11월 27일이다.
너무 짧았다.
정말 너무 짧았다.
드림캐스트는 실패한 게임기였지만 실패한 하드웨어는 아니었다
이게 내가 드림캐스트를 볼 때 항상 드는 생각이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게임의 방향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뎀을 기본 탑재했고,
온라인 게임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VMU라는 독특한 메모리카드를 만들었고,
NAOMI 아케이드 하드웨어와 연결되는 개발 환경을 갖췄고,
VGA를 통한 프로그레시브 출력까지 지원했다.
『소울칼리버』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
『쉔무』의 거리를 돌아다닐 때의 느낌,
『크레이지 택시』의 화려한 색,
『젯 셋 라디오』의 그래픽,
『버추어 테니스』의 깨끗한 화면,
그리고 『판타시 스타 온라인』으로 보여준 온라인 게임의 가능성.
지금 생각해 보면 드림캐스트에는 이후 게임기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미래의 모습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조금 지나치게 일찍 왔던 게임기였던 셈이다.
그래도 결국 나도 PS2를 샀다
여기서 이야기가 조금 웃겨진다.
그렇게 PS2가 미웠던 나도 결국 PS2를 샀다.
그리고 신나게 했다.
좋은 게임이 너무 많았으니까.
게임 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버티겠는가.
결국 게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그래서 내게 PS2는 묘한 게임기다.
정말 재미있게 즐겼고 명작도 수도 없이 만났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세가의 마지막 게임기를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낸 상징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아직도 드림캐스트와 PS2 멀티플랫폼 게임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드림캐스트 쪽부터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봐. 역시 드캐 쪽이 더 깨끗하잖아."
어쩌면 추억 보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30년 넘게 게임 그래픽을 봐온 내 눈에는 아직도 그렇다.
PS2가 더 성공한 게임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가 더 좋아했던 하드웨어는 드림캐스트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대를 켜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드림캐스트의 전원 버튼부터 누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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