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어 파이터 — 텍스처도 없었는데 우리는 왜 충격을 받았을까

요즘 기준으로 《버추어 파이터》 1편의 그래픽을 보면 솔직히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각진 얼굴.

삼각형 몇 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몸.

손가락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얼굴 표정도 없다.

심지어 캐릭터에 제대로 된 텍스처조차 거의 없다.

그런데 1993년 오락실에서 이걸 처음 봤던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충격이었다.

나 역시 지금 다시 화면을 보면 그래픽이 얼마나 단순했는지는 너무나 잘 보인다.

그런데 당시의 충격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때까지 격투게임의 정점은 '잘 그린 그림'이었다

당시는 《스트리트 파이터 II》의 시대였다.

캐릭터를 얼마나 멋지게 그리느냐가 중요했고, 근육과 표정, 타격 동작을 얼마나 멋진 도트 그래픽으로 표현하느냐가 게임의 인상을 좌우했다.

그런 시대에 갑자기 이상한 게임 하나가 나타났다.

캐릭터가 그림이 아니었다.

입체였다.

앞으로 움직이고 뒤로 움직이고, 카메라가 움직이면 캐릭터의 옆과 뒤가 실제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유 스즈키 본인도 당시 반응을 회상하면서 사람들이 캐릭터를 보고 대략 '골판지 상자 같은 인형들이 움직인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예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처음 본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하다.


사실 예쁘게 만들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다.

《버추어 파이터》가 저런 그래픽을 선택한 것은 미니멀리즘이라는 거창한 미학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당시 기술로는 그것밖에 못 했다.

《버추어 파이터》가 돌아가던 세가 Model 1은 플랫 셰이딩 기반의 3D CG 기판이었다.

유 스즈키의 설명에 따르면 스크롤되는 배경 등을 제외하면 캐릭터를 삼각형과 사각형 폴리곤으로 만들어야 했다.

텍스처를 붙여 디테일을 속이는 방법도 사실상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 2D 격투게임과 그래픽의 화려함으로 정면승부를 하면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 스즈키는 다른 쪽을 선택한다.

그래픽이 아니라 움직임을 진짜처럼 만들자.

이 판단이 결국 버추어 파이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을 움직여본 사람이 없었다

지금 게임회사에서 캐릭터를 만들면 당연히 애니메이터가 있다.

모델러가 모델을 만들고 리깅을 하고 애니메이터가 움직임을 만든다.

그런데 유 스즈키의 회고가 재미있다.

버추어 파이터를 만들 당시에는 3D 캐릭터의 모션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모션 디자이너'라는 역할 자체가 사실상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제가 생겼다.

프로그래머 쪽에서는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디자이너는 또 프로그래머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사람을 움직여본 적이 없으니 캐릭터 움직임이 이상했다.

유 스즈키 표현으로는 처음 만든 캐릭터들이 마치 도라에몽처럼 움직였다고 한다.

ㅋㅋㅋ

개발진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럼 직접 무술을 배워"

지금 같으면 모션 캡처 스튜디오를 잡거나 전문 무술가를 불러 레퍼런스를 촬영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럴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 스즈키는 사무실 공간을 비우고 개발자들에게 직접 무술을 배우게 했다.

왜 주먹을 이렇게 뻗는지.

왜 발을 이렇게 디디는지.

체중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래픽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똑같은 문제를 만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제대로 그릴 수 없다.

사람 몸을 모르면 좋은 캐릭터를 만들기 어렵고,

관절 구조를 모르면 자연스러운 포즈를 잡기 어렵고,

재질을 관찰하지 않으면 좋은 텍스처도 만들기 어렵다.

툴 사용법을 잘 아는 것과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30년 전 개발자들도 결국 같은 문제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버추어 레이싱의 피트크루가 시작이었다

버추어 파이터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AM2는 이미 1992년 《버추어 레이싱》에서 폴리곤 3D를 다루고 있었다.

자동차를 입체 공간에서 움직이는 데 성공한 유 스즈키는 다음 단계로 사람의 몸을 표현하는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버추어 레이싱》의 피트크루를 이용해 사람 움직임을 시험했다.

자동차에서 사람으로.

《버추어 레이싱》에서 《버추어 파이터》로.

기술이 한 단계씩 이어진 것이다.

게임 개발 역사를 보다 보면 이런 연결이 참 재미있다.

명작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실패했던 것, 실험했던 것, 우연히 성공했던 것들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바지콴은 사실 정확하지 않았다

버추어 파이터의 주인공 아키라 하면 역시 팔극권(바지콴)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편 개발 당시에는 실제 무술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유 스즈키가 이후 중국을 방문해 실제 팔극권을 조사했는데, 현지 무술가에게 버추어 파이터의 동작을 보여주자 실제 팔극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2편에서는 실제 무술과 문화적 배경을 더 제대로 반영하려 했다.

이것도 게임 개발에서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일단 만들어놓고 나중에 보니 틀렸다.

ㅋㅋㅋ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틀렸다는 걸 알았으면 다음 작품에서 고친다.

그래서 《버추어 파이터 2》는 단순히 그래픽만 좋아진 후속작이 아니었다.

첫 작품에서 못했던 것들을 다시 제대로 해보는 게임이기도 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버추어 파이터 2가 나왔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이 가장 무섭다.

《버추어 파이터》가 1993년.

《버추어 파이터 2》가 1994년이다.

겨우 1년 차이다.

그런데 그래픽 차이는 거의 세대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

Model 2에서는 텍스처 매핑이 가능해졌고 캐릭터의 모습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움직임 역시 더 부드러워졌다.

유 스즈키도 훗날 2편은 1편에서 시간과 예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현한 작품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요즘 게임 개발 속도로 생각하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당시 3D 기술 발전 속도가 그만큼 미친 시기이기도 했다.

1993년 버추어 파이터를 보고 놀랐는데,

1994년 버추어 파이터 2를 보고 또 놀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철권》을 보고, 《릿지 레이서》를 보고,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을 집에서 돌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재미있는 시대를 살았다.


지금 그래픽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요즘 캐릭터 제작을 보면 정말 엄청나다.

스캔 데이터가 있고,

수천만 폴리곤의 스컬핑을 하고,

PBR 머티리얼을 사용하고,

피부의 미세한 굴곡과 모공까지 표현한다.

머리카락도 한 올 한 올 움직인다.

그런데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픽 기술이 발전한 만큼 우리가 받는 충격도 커졌을까?

나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버추어 파이터의 아키라는 얼굴 표정도 제대로 없었다.

손가락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키라가 앞으로 한 걸음 들어와 철산고를 날리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사람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픽 디테일 때문이 아니었다.

움직임 때문이었다.


결국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

게임 그래픽 일을 오래 하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기술은 중요하다.

좋은 툴도 중요하고,

폴리곤도 중요하고,

텍스처 해상도도 중요하고,

라이팅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수단이다.

버추어 파이터 개발팀에게는 텍스처조차 없었다.

그러니 자신들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찾았다.

폴리곤은 못생겼지만 움직일 수 있다.

그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국 게임 역사에 남았다.

어쩌면 좋은 아트 디렉션이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 무엇을 가장 강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

30년이 지나 모공까지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각진 아키라의 철산고가 기억난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그래픽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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